호치민시한국국제학교 교내에 다양한 교사 동호회가 있는데 오늘은 독서 동아리 '독독'의 첫 모임 날이었다. 해외에서는 한국 책을 구하기가 어려운데 그것보다 더 어려운게 독서토론 모임에 나가는 것이다. 책을 읽어야 독서토론을 할텐데 책을 구하기가 어려우니 같은 책을 읽고 모이는 독서토론은 더더욱 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영리하게도(?) 모임장님이 첫번째로 선택한 책은 아무튼 시리즈이다. 학교 도서관에 아무튼 시리즈 책이 많고 온라인 도서 어플에도 아무튼 시리즈 책이 많다. 각자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소개하는 형식이다.
내가 정한 책은 아무튼, 예능이다.
도서명. 아무튼 예능
작가. 복길
한줄평. 내가 즐겨보던 예능의 추억, 그리고 여성 프로그램에 대한 갈증.
개인평점. ★★☆☆☆
완독일. 2024.4.19.
https://www.yes24.com/Product/Goods/78567088
여러 책 중 아무튼, 예능으로 고른 이유는 나 역시 어렸을 때부터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봤기 때문이다.
웹툰파, 영화파, K-pop파 등 취향들이 여러 갈래로 나뉘는데 나는 드라마파, 예능파로 확실한 TV파였다. 예능 중에서는 개그콘서트, 생활의달인을 보곤 했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유퀴즈온더블럭, 방구석1열 등을 봤던 것 같다. 유튜브로 매체가 옮겨간 요즘은 장도연의 살롱드립, 이석훈의 썰플리 등을 본다. 취향의 일관성은 딱히 없어보이지만 굳이 공통점을 찾아보자면 소소한 사람들의 이야기, 너무 자극적이지 않은 콘텐츠를 선호한다는 것은 맞는 것 같다. 이 책을 읽다보니 내가 모르는 예능들이 많았고 이것저것 아무거나 잘 본다고 생각했던 나에게도 예능 프로그램에도 편식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땅 파기', 나는 자연인이다>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는 '땅 파기'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그램과 관련된 장이다.
한국에서 살 때 할머니와 몇 년째 쭉 같이 살고 있었다. 할머니가 항상 틀어놓던 프로그램이 있는데 건강 프로그램 아니면, '나는 자연인이다'이다.
이 프로에 출연했던 어이 없고 웃긴 사람들의 삶 이야기를 짧은 영상으로만 접하곤 했던 나에게는, 할머니의 진지한 시청이 이해가지 않을 떄가 있었다.
나는 이 방송을 늘 골 때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웃을 수 있었다. 대체 왜였지. 아마도 거의 모든 자연이이 대체의학을 신봉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략) 모두 일리가 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택하지 않을 삶의 방식이기 떄문일 거다. 연령이나 세대 문제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뭐가 됐든 그 방송 속 자연인들의 삶은 지금의 나에게 어떤 미래도 제시하지 못한다. 그래서 웃을 수가 있따. 내 주변 또래들한테 이런 얘기를 꺼내보니 "확 머리 밀고 산속으로 들어갈 거야!"라고 외치는 아빠는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이런 나의 마음을 작가가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니. 그리고 우리 할머니 말고 다른 어르신 분들도 이 프로그램을 이렇게 많이들 보고 있었다니. 이 뒤에 책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책임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자꾸만 버겁다. 10대 때는 무책임한 누군가를 지탄하는 것이 삶의 원동력이었는데, 진짜로 이제는 누굴 욕할 처지가 못 된다는 생각에 밤에 잠도 안 온다. '난 내가 욕하던 어른과 얼마나 다른 방향으로 자랐을까. 누구를 탓하고 욕하는 만큼 나는 내 앞가림을 잘하고 있나. -59쪽
작가처럼 요즘은 다른 누군가에 인생에 잣대를 내밀고 평가하는 그런 말을 할 에너지 조차 없다는 것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내 앞가림이나 잘 하자. 모든 사람은 각자 나름의 삶이 있는 것이다.
같은 챕터 마지막쯤엔 불안과 관련된 말이 나온다. 요즘 나의 마음을 가장 잘 대변해주는 말 같아서 독서토론에서도 마음에 드는 구절로 골랐다.
불안은 자꾸만 여러 선택들을 빨리 결정하도록 보챈다. 그때마다 나는 템포를 늦춰볼 생각이다. 어떤 지혜나 현명함을 요구하는 분위기를 벗어나 나에게 닿아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계획을 세워보자고. 결심과 선택이 필요한 순간에 용감해지고, 나만의 원칙을 만들어 지키자고. 그리고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를 키울 것. 결국 나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69쪽
노후와 관련해 이야기를 다루다가 나온 말이다. 이런 생각을 노후 때문에 한 것은 아니지만, 불안 때문에 올바른 선택을 못 내린 적이 최근에 몇 번 있었다. 감정에 휘둘리거나 해야 될 일을 하지 않은 채 잡생각을 하다가 시간이 흘러가버린 적이 있다. 나만의 기준을 만들고 중심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방구석 1열 프로그램을 나도 재밌게 봤던 터라 그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도 재밌었다. 특히 작가가 변영주 감독님의 팬이라 이 부분이 길게 서술되어 있다. 여성 감독으로서 어려웠을 부분, 여성 감독으로서 변영주 감독님이 뚝심 있게 지켜나간 부분.
그리고 책 말미엔 다양한 여자 개그맨들이 나온다. 박미선, 송은이, 김신영 개그우먼들 등.
제대로 수평을 잡으려면 기울어진 쪽에 더 무거운 추를 달아야 한다. -182쪽
여성 시각으로 바라본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이나 방송 인물에 대한 평가 부분도 흥미로웠다. 세상이 조금씩 계속 변하듯 방송도 변해갈 것이라고 믿는다.
독서토론은 항상 즐겁다. 어떨 땐 재미없게 읽었던 책도 독서토론을 통해 재밌는 감정으로 기억에 남기도 했다. 이번에는 사람들이 고른 다양한 아무튼 책을 들어볼 수 있어서 그 사람의 평소 생각, 그 사람의 취향을 알 수 있어서 더 편안한 토론이었다.
참여자가 많아서 독서토론은 두 팀으로 나눠서 진행했다. 우리 모둠에서는 아무튼, 서재, 술집, 술집, 잠, 인기가요, 피트니스를 들어볼 수 있었다.
다른 모둠에서 선택된 아무튼 책 시리즈 중에는 아무튼, 장국영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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