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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즐기기/다독다독

[서평] 아버지의 해방일지 - 정지아 l 사람 냄새 나는 나의 아버지

by 멀티쌤T 2024.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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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아버지의 해방일지
엮은이. 정지아
한줄평. 사람 냄새 나의 아버지
개인평점. ★★★★★
완독일. 2024.8.18.

 

 
 '아버지가 죽었다.'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이 책은 아버지가 죽고 나서 장례식장에서 아버지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아버지에 대한 서사를 이어나가는 책이다. 아버지라는 사람에 대해 주인공이 알고 있던 모습, 그리고 새롭게 알게 되는 모습들까지.
 
 
 
 
 
 
 


 

핵심만 중요한 사회주의자답게 사소한 일상 따윈 뒤돌아보지 않는 사회주의자답게
19쪽/268쪽, '아버지의 해방일지'

 
 
 오랜만에 한국 소설을 읽어서인지 작가와 같은 언어를 공유하고 있어서 글을 읽을 때 즐거움을 더 크게 느꼈다. 작가의 어투, 표현이 웃겨서 중간중간 피식 웃을 때가 많았다. 사회주의자였던 아버지에 대해 비꼬며 적어내려간 이 부분도 그 중 하나였다. 사회주의의 기본이 유물론이라는 철학을 이렇게 사용한다고?
 
 
 
 

그 마음 쌩깐 것이 늙어서야 마음에 걸렸다. 나도 모르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마음의 상처를 준 사람이 그만은 아닐 것이다. 인간이란 이렇게 미욱하다.
28쪽/268쪽, '아버지의 해방일지'

 
 주인공을 조카처럼 여기고 반갑게 인사하던 최 약방 아저씨의 인사를 무시했던 것을 주인공이 회상하는 부분에서 나오는 구절이다.
 나의 어떤 행동이 너무 크게 내 마음에 남고 마음에 걸릴 때가 있다. 막상 그 사람에게는 기억에 남지 않을 사건이 었을 수도 있는데. 대학생 시절 춤 동아리에 갓 들어간 새내기 시절에, 선배들이 무대를 하며 춤을 추는데 내가 실수로 노래를 끈 적이 있다. 어찌나 식은 땀이 흐르던지 그 이후로 기계를 만지는 것이 트라우마가 되어서 실시간으로 흘러가는 무대에서 기계를 만지는 것이 너무 무서웠다. 그런데 10년쯤 흐른 후에 그 무대에 섰던 언니와 우연히 인연이 닿았다. "언니 그때 노래 껐던 거 나였던 거 기억나? 나 그때 좀 트라우마 생겼어."라고 했는데 언니는 기억 조차 못 하고 있었고 그게 나였던 것은 더더욱 몰랐다. 오히려 언니는 "이봐, 이렇게 나는 기억도 못 하는데. 잊어!"라고 쿨하게 말해주었다. 인간이란 이렇게 미욱하다.
 
 
 
 
 
 

자기 손으로 형제를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을 안고 사는 이에게 하염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49쪽/268쪽, '아버지의 해방일지'

 
 
 조선일보만 보는, 사상은 다르지만 사람은 좋은 박 선생에 대한 챕터에서 나오는 구절이다. 박 선생은 학도병으로 끌려갔는데 자신의 형, 누이들과 반대편에서 전쟁을 겪었던 사람이다. 형과 누이들은 전쟁에서 살아돌아오지 못 했다.
 나는 운이 좋게도 전쟁을 겪지 않고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자기 손으로 형제를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을 느껴본 적인 없다. 그런데도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던 부분이었다.
 
 
 
 
 
 

그 자랑이 자기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갈 줄 어찌 알았겠는가. 작은아버지는 평생 빨갱이 아버지가 아니라 자랑이었던 아홉살 시절의 형을 원망하고 있는 게 아닐까. 술에 취하지 않으면 견뎌낼 수 없었던 작은아버지의 인생이, 오직 아버지에게만 향했던 그의 분노가, 처음으로 애처로웠다.
129쪽/268쪽, '아버지의 해방일지'

 
 
 작은 아버지에 대한 두번째 챕터에서 나오는 구절이다. 평생 아버지를 원망하던 작은 아버지의 서사가 더 나오면서 주인공이 작은 아버지를 더 이해하게 되는 부분이다.
 누구에게나 숨겨진 사연이 있다. 눈에 보이는 게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닌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에게 비친 나의 모습 역시 전부가 아니다.
 
 
 
 
 
 

한때 적이었던 사람과 아무렇지 않게 어울려 살아가는 아버지도 구례 사람들도 나는 늘 신기했다. 잘 죽었다고 침을 뱉을 수 있는 사람과 아버지는 어떻게 술을 마시며 살아온 것일까? 들을 수 없는 답이지만 나는 아버지의 대답을 알 것 같았다. 긍게 사람이제. (...) 나는 아버지와 달리 실수투성이인 인간이 싫었다.
138쪽/268쪽, '아버지의 해방일지'

 
 
  나도 실수투성이인 인간이 싫다. 사실은 실수투성이인 내가 싫다. 나는 다른 사람의 실수에는 비교적 너그러우면서 내 스스로의 실수에는 한없이 엄격하게 굴 때가 있다. 이 책의 아버지와 구례 사람들처럼 좀 더 인생 경험이 쌓이고 모든 일에는 딱 한 가지로만 정의내릴 수 없는 무엇인가 있다는 걸 더 느끼게 되면 '사람이라면 다 그렇지 뭐.' 하고 스스로에게도 너그러워지는 성숙함이 나에게도 올까 싶다.
 
 
 
 
 
 

 죽음으로 비로소 아버지는 빨치산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로, 친밀했던 어린 날의 아버지로 부활한 듯했다. (...)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231쪽/268쪽, '아버지의 해방일지'

 
 
 죽음은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수면 아래로 가라앉히고 중요한 것들을 수면 위로 띄우는 효과가 있다.
 
 
 


 
 
 잘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장례식장에 온 사람들을 보면 글의 아버지는 사람 냄새 넘치는 사람이었고 사람들의 다양한 사정들을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념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이념보다는 사람을 보는 사람이었다.
 사람 냄새 나는 소설을 찾는 사람들에게 본 책을 추천한다.
 
 
 어렸을 때 한국 드라마를 많이 봤었는데 사람 냄새 넘치는 아버지에 대해 읽다보니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의 주인공 정지오가 떠올랐다. 정지오는 사람 냄새 넘치면서도 아버지에 대한 다양한 감정도 많은 사람이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재밌게 읽은 사람들에게 이 드라마도 추천한다!
https://program.kbs.co.kr/2tv/drama/worlds/pc/index.html

그들이 사는 세상

화려함 속에 인간애를 갈망하는 방송사 드라마 제작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program.kbs.co.kr

 




2024년 9월 12월 9월 독독모임 후기 추가!


독독모임 때문에 미리 읽었던 책인데 토론에서 나처럼 이 책이 올해 읽은 책 중 재밌었다는 분이 많았다.

성격과 관련된 이야기, 현실에 진짜 있을 것만 같은 입체적 인물들, 죽음에 대한 이야기들까지 토론도 너무 재밌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다른 토론자의 이야기는,
부모님에 대해 인간적으로 너무 몰라서 질문을 한다는 이야기였다. 본 책의 주인공 역시 아버지에 대해 잘 몰랐다가 장례식장에 가서야 아버지의 다양한 모습에 대해 알게 된다. 이렇게 부모님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우리나라는 많다는 생각이 들어 친구와 ‘부모님에게 하고 싶은 질문 리스트’를 만든 적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부모님을 만날 때마다 질문 리스트를 꺼내 몇 개씩 하곤 한다고.
생각해보니, 나는 부모님에 대해 무엇을 알까 생각해보면 부모님이 처음 서로 만나게 됐을 때 스토리 정도이다. 친구와 있었던 웃긴 에피소드라던가, 너무 무서웠던 경험, 나를 키우며 있었던 힘들었던 일들에 대해 내가 자세히 물어본 적이 있었던가. 이 질문 리스트 만들기는 나도 언젠가 꼭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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